OFF LINE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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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메디컬 탑팀]
 
한적한 주말 오후, 미루던 만남을 신청했다. 통증을 겪고 나니, 마음이 한결 과감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연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딱히 아는 맛집은 없어서 몇 시간을 알아 본 것 같다. 결국 그녀는 그녀가 사는 강남과 내가 사는 구로의 중간, 신림에서 만나자고 했고, 몇 시간을 알아 본 것들은 허사가 되었다. 그녀가 미워서 하나도 들떠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흥얼거리며 머리를 만지는 내가 조금 더 미웠다.
 
저녁이 되고 약속 장소에 미리 나가 있다 보니 작은 노점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 붉고 밝은 색의 장미들 중에 그녀를 닮은 파란 장미를 한 송이 골랐다. 거품을 씌운 가격을 흥정하고 돈을 내밀었을 때, 때마침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쓰러져 가는 봄과 불완전하게 피어나는 뜨거운 밤바람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약속 장소인 3번 출구 앞에 더욱 불완전한 그녀가 위태롭게 피어 있었다. 나는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고는 옅은 화장기의 얼굴을 반짝이며 웃었다.
 
“빨리 가자. 어휴 나 배고파. 어디야?”
 
오래전부터 봐왔던 사이처럼 그녀는 내 팔짱을 끼고 무작정 걸었다. 다행인 것은 맞는 방향이라는 것이었고, 불행인 것은 내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는 것이었다.
 
“뭐 먹지 뭐 먹지?”
 
그녀는 가게 안에 들어서서 메뉴를 번쩍 들고 말했다.
 
“그래 나도 만나게 돼서 반가워.”
 
나는 농담처럼 비꼬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내게 악수했다.
 
“여기 만들어 먹는 초밥도 있나 봐~!”
 
“나오는 연어를 올려먹는 방식인 것 같은데.......”
 
“그럼 이걸로.”
 
음식을 주문하고 나는 어색하게 창밖의 파전 집만 봤다.
 
“사람 앞에 두고~!”
 
그녀는 맹한 나의 손을 꼬집으며 말했다.
 
“어떻게 지냈어?”
 
매일같이 연락하는 사이에 적절치 않은 우문이었다.
 
“그냥 말했잖아. 썸 탄다고. 얼마 전에 걔랑 곡성 봤어.”
 
“으음~. 난 아직 안 봐서 너랑 보려고 했는데.......”
 
“여름에 더워지면 영화제도 가려고 걔랑.”
 
“흠~. 나도 가고 싶은데.......”
 
“뭐야 미안하게시리!”
 
그녀는 몸을 일으켜 작은 주먹으로 내 가슴을 내리쳤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이라고 말했다.
 
“근데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그 꽃 뭐야?”
 
“그냥. 오다 주웠어.”
 
“부산 남자 코스프레야?”
 
“됐으니까 받아.”
 
“고마워. 꽃 처음 받아봐.”
 
그녀는 우수에 찬 눈으로 꽃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음식이 나오고 나는 위생장갑을 끼고 초밥을 빚어,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
 
“너도 좀 먹어.”
 
그녀는 밥이 다 사라질 때까지 오물오물거리며 뒤늦게 내게 말했다.
 
“됐어. 배고프다며.”
 
“회에는 청하인데.”
 
“시킬까?”
 
“오오, 식빵군 눈치 좋아~.”
 
“라이스 양은 넉살이 좋네.”
 
그렇게 우리는 술병을 비워나갔다. 그녀는 화장실로 잠깐 자리를 비웠고, 나는 혼자인 어색함에 메시지도 오지 않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친구 옆에 앉아야지.”
 
잠시 후 그녀가 어느 틈에 구한 건지, 가득 찬 맥주 잔을 들고 내 옆에 앉아 머릴 기대고 폭 안겼다.
 
“나 덜렁이라서 자주 넘어져. 근데 부산에서 넘어졌을 때, 짧은 치마를 입고 있던 거라.”
 
“대충 무슨 얘긴지 짐작이 가는데.”
 
“근데 머슴아들이 팬티 색까지 말하면서 놀려대는 거 있지.”
 
“넌 왜 그런 얘기 밖에 없어.......”
 
“그러게. 왜 그런 일들만 있을까. 나는 나름 책잡힐 행동 안 하고, 약자라고 생각될 행동들을 하지 않았는데.”
 
“........”
 
“주관도 있고, 불합리에 문제의식도 충분하고, 강해 보이려고 애쓰는데. 왜 남자들은 하나같이 날 어떻게 해볼 생각만 하고. 나는 뭐 때문에 거절을 못하는 거지?”
 
내 어깨를 적시는 그녀의 머리를 나는 말없이 쓰다듬었다.
 
“간절하고 순수하게 공허한 적 있어?”
 
“매일이 그래.”
 
“나도. 그래서 네가 좋은가 봐.”
 
애매한 의미의 호감이라는 말을. 사랑이 아닌 것처럼 내뱉었다.
 
“처음 만났는데 얘기가 너무 무거워졌네. 아무튼 그랬다니까....... 안 웃겨?”
 
내 옆에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큰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새하얀 이를 손으로 가리고 나를 바라봤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속으로 외치며 내가 쥐여준 파란 장미를 든 그녀의 손을 누르고 파고들어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고마워......”
 
그녀는 앞머리를 만지며 내 품을 벗어났고. 멀리서 지켜보던 직원들이 입을 막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근데 왜 하필 지금이야?”
 
“뭐가?”
 
“내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거 알잖아.”
 
“그래서?”
 
“네 고마운 마음을 내가 거절할 수 있는데. 타이밍이 안 좋다고 생각 안 들어?”
 
더 깊은 선택의 순간이 왔다. 바람 빠진 공처럼 차이더라도 어떠한 결심을 전해야 할 때가.
 
“나한텐 타이밍이라는 게 없었어. 왕도 없는 사랑에, 한시도 떠오르지 않는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없었어. 이런 내게 눈치 없는 넌 참 비겁해, 이런 내게 참으라는 넌 참 못됐어. 그런 너도 하나같이 좋아해.”
 
“계속 친구로는 안 돼?”
 
“너 잃을까 두려움뿐인 친구 같은 거 계속하고 싶었으면 내 마음 꺼내 보이지도 않았어.”
 
“그럼 내가 거절하면?”
 
“서로 이따금씩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그게 그리움이면 더 좋고.”
 
나는 관계를 걸어놓은 비겁한 방법을 쓰더라도 자유에 의지해 강경하게 말했다.
 
그녀는 망설이며 장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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